제 11 일(6월 28일) 흑해 권역
개관
사도행전의 본도로서 18개 도로 구성되어있다.
가장 강우량이 많고, 차와 개암열매(헤이즐넛) 재배로 유명한 이 지역은 고대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리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했었다.
인구는 12 퍼센트 정도, 인구 증가율은
약 22 퍼센트에 이른다. 그러나 인근 중앙 아나돌루 지역과
마르마라해 지역으로 계속 인구가 유출되면서, 시골 지역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흑해 지역은 터키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서부 중심지 존굴닥
및 기타 도들
존굴닥(교회-X, 신자-X, 사역자-O)
터키 최대의 석탄과 철강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인구증가가 더딘 채
약 62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1차대전 이후 그리 스인들이
떠나버린 후, 이곳에 정착한 터키인 무슬림들은 자기 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잘 모른다. 현재 현지인 신자들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즈제(교회-X, 신자-O, 사역자-X)
99년 8월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다. 지진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지역민들 중 지진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장애를 겪거나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고아들이 많이 있다. 지진 이후 소수의 신자들과 모임이
있었으나 현재는 알려진 바가 없다.
카라뷕(교회-X, 신자-O, 사역자-X)
1937년 터키에서 최초로 시작된 철강회사가 존재하는 철강업이 주 수입원이다. 종교색이 강한 카라뷕 대학교는 약 4만명의 재학생이 있으며, 정원을 6만명으로 늘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학기중에 전국에서 유학을 온 크리스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주일모임을 갖고, 매년 2회(부활절, 성탄절) 초청모임을 통해 복음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있다.
기도) 대학청년들의 모임을 기점으로 카라뷕내
지속적인 교회모임이 개척될 수 있도록, 카라뷱대학내 청년모임을 중심으로 인근대학(카스타모누, 바르튼)에도
모임이 구성될 수 있도록, 주께서 이들의 모임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자들위에
지혜와 능력을 더하시도록, 대학청년전문사역자를 보내주시도록.
카스타모누(교회-O, 신자-O, 사역자-O)
흑해 서북지역 중 가장 넓은 면적과 비옥한
토지를 자랑한다. 이을가즈와 프나르바쉬 등 대부분 지역은 수목이 무성하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있어 찾는 관광객들이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차대전과 터키독립전쟁 시 앙카라에서 이네볼로
항구까지 전쟁물자를 운반하는 등 독립전쟁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이 강하다.
현재 난민 자체 모임(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등에서 온 난민)이
2곳이 있으며, 2014년 성탄절을 시작으로 현지인과 난민들로 구성된 소수의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카스타모누에도 소수의
아르메니안 인 후손들이 있는데 이들 가정들이 함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기도) 강한 민족주의와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가 깨어지고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더 강하게 일어나도록, 이 지역의 아르메니안 가정들이 경계와 소극적인
반응에서 벗어나 말씀과 예배에 대한 갈망함으로 새롭게 반응할 수 있도록, 카스타모누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해가도록, 사역자들이 지속적으로 교회개척과 복음전파의 삶을 담대하게 살 수 있도록
초룸(교회-X, 신자-X, 사역자-X)
흑해 중앙에 위치해 있고, 크즐강과 델리제강을 포함한 비옥한 하천 협곡들이 있는 산악지형이다. 농업(곡물, 대마, 과일, 채소 등)과 목축(염소와
양)이 주요산업이다. 주도인 초룸은 가죽 제품과 도기류가
생산되는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다. 이 지역은 한때 로마 제국의 갈라디아 주의 일부분이었다. 소수의 신자들이 있으나 어떤 모임도 알려진 바가 없다.
기도) 흑해 서부지역의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성경통신과정과 TV, 인터넷, 라디오 등을 통해 응답자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도록, 이 지역의 보수성을 깨시고 복음의 빛이 강력하게 드러나도록. 뒤즈제의
흩어진 가정 모임이 재개되도록
동부 중심지 트라브존과
삼순(별도)
트라브존(교회-O, 신자-O, 사역자-O)
흑해자유무역지대를 통해 러시아와 남카프카즈 무역을 통해 급성장해 왔다(인구증가율 38%). 그러나 현재는 중앙 아나돌루 지역과 마르마라해 지역으로 계속 인구가 유출되면서 성장이 정체된 상태이다(인구 78만 명).
제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그리스인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살았으나, 전쟁 뒤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인구 교환으로 지금은
그리스인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때 큰 규모의 아르메니아인 공동체들이
정착해 있었으나 20세기 초 20-30년간 이들은 흩어졌다.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 모두가 자신들의 종교가 기독교라 주장하며 이들 가운데 복음주의 운동이 있었다.
2005년에 카톨릭 신부를 16세의 학생이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 이후 신자들의 가정모임은 흩어지고 사역자들이 떠나기도 했으나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신분증에 종교란을 그리스도인으로 바꾸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현지인 가정교회를 최근에는 외국 사역자 2가정이 섬기고 있으며, 다른 외국 사역자들이 가정교회를 세우면서 다시 이 도시의 복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 현지인 가정교회가 믿음으로 모든 상황을 돌파하며 복음을 전하는 비전 가운데 새로워지도록. 섬기는 사역자들 가운데 풍성한 사랑과 역동적 사역들이 일어나도록. 강경
민족주의와 이슬람화, 물질주의로 가고 있는 지역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라즈인- 흑해의 미전도 종족
(제6일 민족 참고)
<오르두 아가페교회 첫 예배>